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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인간이 만든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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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일일라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26-01-1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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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만들어 온 수많은 시스템 가운데 무엇이 가장 근본적인가를 묻는다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정치도, 시장도, 기술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의 전제에 놓인 시스템, 바로 농업이다. 농업은 특정 산업의 하나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작동하기 시작한 가장 최초의 구조이며 지금까지도 유효한 기본 시스템이다.

농업이 등장하기 전 인류는 축적할 수 없었다. 먹을 것을 저장하지 못했고,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었다. 농업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개념을 바꾸었다. 수확을 기다리는 시간,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계획, 잉여를 저장하는 구조는 사회 조직과 분업, 제도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국가와 도시, 시장과 법은 모두 농업이라는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2차적 시스템이다.

이 점에서 농업은 기술이나 문화보다 더 깊은 층위에 존재한다. 기술은 바뀌고, 제도는 해체되지만, 농업이 무너지면 그 위에 놓인 모든 시스템은 함께 흔들린다. 아무리 정교한 금융 시스템도, 아무리 고도화된 디지털 인프라도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작동할 수 없다. 농업은 다른 시스템을 보조하는 하위 요소가 아니라, 다른 모든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다.

현대 사회는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글로벌 무역과 물류, 기술 발전은 식량을 언제든 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 결과 농업은 과거의 산업, 관리 대상, 비용 항목으로 취급되기 쉽다. 그러나 이는 농업이 사라져도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인식이다.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농업의 부재가 아니라, 농업의 존재감이다. 공급망이 흔들릴수록, 기후가 극단화될수록, 농업은 다시 시스템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농업이 근본적인 시스템인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유일한 일상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산업과 도시는 자연을 외부 변수로 다루지만, 농업은 자연을 내부 요소로 받아들인다. 토지, 물, 기후, 생태계는 농업의 일부이며, 동시에 농업의 결과다. 이 순환 구조 속에서 농업은 환경을 소모하는 활동이 아니라, 환경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기능해 왔다. 농업이 사라진 공간은 자연으로 자동 복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리되지 않은 자연은 더 큰 위험으로 되돌아온다.

농업은 단기 효율로 설계된 시스템이 아니다. 농업의 시간은 느리고, 성과는 누적되며, 실패의 비용은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이 특성 때문에 농업은 현대의 속도 중심 사회와 자주 충돌한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농업을 근본적인 시스템으로 만든다. 농업은 사회에 속도를 조절하는 기준점을 제공해 왔다. 모든 것을 빠르게 바꾸려는 사회일수록, 농업은 그 한계를 가장 먼저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농업이 과거의 시스템이라는 오해다. 농업은 가장 오래된 시스템이지만, 동시에 가장 오래 살아남은 시스템이다. 이는 농업이 정체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많이 적응해 왔기 때문이다. 도구가 바뀌고, 기술이 결합되고, 구조가 재편되어도 농업이라는 시스템 자체는 유지되어 왔다. 오늘날 데이터와 기술이 농업과 결합하는 현상은 농업의 종말이 아니라, 농업 시스템의 또 한 번의 진화다.

농업을 산업 중 하나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농업의 깊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농업은 인간이 만든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이며, 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단순한 산업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농업을 지킨다는 것은 특정 직업이나 분야를 보호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검증된 시스템을, 다음 시대에도 작동 가능하게 유지하겠다는 결정이다. 농업이 흔들리면 모든 시스템이 흔들린다. 이 단순한 사실이야말로, 농업이 인간이 만든 가장 근본적인 시스템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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