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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생존의 문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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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책하기
댓글 0건 조회 40회 작성일 26-01-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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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을 둘러싼 논의는 종종 선택의 언어로 이루어진다. 경쟁력이 있으면 살리고, 없으면 줄여도 되는 산업. 효율이 낮다면 수입으로 대체해도 되는 영역.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농업의 본질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농업은 산업 정책의 선택지가 아니라, 사회가 존속하기 위한 생존의 전제 조건에 가깝다. 농업을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언제까지 선택의 문제로 착각하느냐는 데 있다.

현대 사회는 글로벌 분업과 자유무역을 전제로 작동해 왔다. 이 구조 속에서 식량은 언제든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상품처럼 취급되었고, 농업의 자급 기반은 효율 논리 앞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반복된 기후 위기, 팬데믹, 전쟁, 공급망 붕괴는 이 전제가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냈다. 식량은 가장 먼저 통제되고, 가장 늦게 회복되는 자원이다. 농업을 포기한 사회는 위기 상황에서 가격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놓고 경쟁하게 된다.

농업을 생존의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농업은 국가의 경제 구조, 환경 관리, 사회 안정성을 동시에 지탱하는 기반이다. 농업 생산이 유지돼야 식품 산업이 존재하고, 관련 물류와 가공 산업이 연결된다. 농업 기반이 붕괴된 사회는 산업 생태계의 앞단이 잘려 나간 구조를 갖게 되며, 이는 장기적으로 고용과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단기 효율을 위해 생존 기반을 외주화한 결과다.

환경 측면에서도 농업은 선택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농업은 자연을 가장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인간 활동이며, 토지와 수자원, 생태계를 동시에 다룬다. 지속가능한 농업이 사라지면 자연은 스스로 회복되지 않는다. 방치된 토지는 황폐화되고, 재난 대응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농업을 유지하는 비용보다 농업을 잃은 뒤 치르는 환경 비용이 훨씬 크다는 점은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농업을 선택의 문제로 오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시간차다. 농업을 줄여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수입은 가능하고, 시장은 작동한다. 그러나 농업은 한 번 무너지면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리는 산업이다. 토지, 기술, 인력, 경험은 단절되는 순간 사라진다. 위기가 닥친 이후에 농업을 다시 선택하려 해도, 그 선택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의 문제는 언제나 사전에만 대응 가능하다.

더욱이 농업의 성격은 이미 바뀌었다. 오늘날 농업은 기술과 데이터, 자본이 결합된 고도화 산업이다. 이는 농업을 유지하는 방식 또한 과거와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 보호의 논리나 낭만적 접근이 아니라, 전략 산업으로서의 투자와 설계가 필요하다. 농업을 살릴 것인가가 아니라, 농업을 통해 사회의 생존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농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 사회는 평시에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위기 앞에서는 가장 먼저 흔들린다. 생존은 언제나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농업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농업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문제는 미래 세대가 위기를 맞았을 때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문제다. 그리고 그 책임은 지금의 사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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